왕따 시키면 한달도 못 버텨…노조도 의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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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시키면 한달도 못 버텨…노조도 의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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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봤자 험한 꼴…” 희망퇴직 면담 녹취록 ‘충격’

등록 : 2014.07.20 20:13 수정 : 2014.07.21 11:08

HMC투자증권 ‘희망퇴직’ 면담 녹취록 단독 입수
“왕따 시키면 한달도 못 버텨…노조도 의미 없어”

“마지막 관문입니다.”

지난 17일 에이치엠시(HMC)투자증권 이아무개 차장은 지역담당 임원인 본부장과 마주했다. 일하고 있던 지점 상담실에서였다. 이윽고 희망퇴직을 강요하기 위한 본부장의 집요한 설득이 이어졌다.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떠날 것인가, 굴욕을 버티고 남을 것인가. 본부장 말대로 이 차장에게는 이 면담이 직장생활의 생과 사를 가르는‘마지막 관문’이었다.

이 회사는 21일까지 900여명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에이치엠시투자증권은 현대자동차 계열 증권회사로, 규모는 작지만 전반적인 업계 불황 속에서도 지난 1분기 35억4300만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한겨레>가 20일 입수한 에이치엠시투자증권 희망퇴직 면담 녹취록을 보면 증권사의 희망퇴직이 어떤 면담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퇴직 위로금으로 유혹하고, 음울한 앞날을 얘기하며 퇴사를 부추긴다. 노동조합의 도움은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직원의 기대를 꺾는다.

최근 증권업계가 앞다퉈 늘리는 외부 방문판매(ODS)조직은 퇴직 압박의 중요한 무기다. 본부장은 면담을 하며 “버텨봤자 나중에 험한 꼴 당한다. 비피(BP·영업 목표치) 못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오디에스 조직 들어간다. 버틸 수 있겠나. 태블릿피시 하나 쥐여주고 하루에 열개씩 채워 와라 그러면 어떡할 건가. 얼마나 굴욕을 당하시려고 그러나. 나이 들어 가지고”라고 말한다. 증권업계는 내방 고객이 줄자 앞다퉈 외부영업을 늘리겠다는 추세다. 보험설계사처럼 돌아다니며 계좌를 트고, 상품을 판매하는 식의 체질 변화 속에서 증권맨들의 일상이 얼마나 강퍅해질 수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기업인 현대차 조직의 과거 구조조정을 언급하기도 한다. 현대차 출신이라는 본부장은 “98년도인가 그때 (현대차에서) 안 나가겠다고 한 사람을 앉혀놓고 결국 뭘 한 줄 아나? 컴퓨터도 전화도 없이 책상하고 의자만 줘놓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게 했다. 하루 종일 나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거다. 왕따시켜 버리면 한달을 못 버틴다”며 현대차 그룹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설명한다. 이에 대해 에이치엠시투자증권 관계자는 “당시와 지금은 현대차의 경영진이 다르다. 지금 현대차 조직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퇴출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직원 상대로 희망 퇴직 신청 받아
퇴직 대상자 찍어 유혹하고 어르고
“대학생 자녀 걱정말라. 2천만원 준다”
“노조? 모기업이 노조에 얼마나 강한데…”

본부장은 노조를 통해 도움을 얻으려는 시도도 의미 없다고 잘라말한다. “비싼 돈 풀어서 나가게 했는데 안 나가면 가만 놔두겠나. 노조? 그것 하나도 안 된다. 자동차 그룹이 얼마나 노조에 강한 조직인데, 쉽게 생각하지 말라.”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며 회사에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매물로 나온 현대증권을 에이치엠시투자증권이 인수할 계획이라는 소문에 대해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현대차)그룹 가서 다 물어보라. 에이치엠시 필요한 존재인가 물어보면 다 필요없다 그런다. 우리 회사 연속성이 있다고 보이나?”라고 직원에게 묻는다.

자녀 이야기를 꺼내드는 대목에선 가장의 고뇌를 퇴직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지금 애가 몇살이냐? 대학생… 대학생 같으면 뭘 걱정하느냐 (학자금 명목의) 2000만원 주는데. 이 돈 언제 챙기려고 하느냐”며 유혹한다.

이 회사 노조 관계자는 “다른 면담 녹취 몇 건도 받아봤는데, 사실상 퇴직 대상자로 낙인찍은 사람에게는 강하게, 아닌 사람들에게는 형식적인 면담만 한다. 희망퇴직이 이뤄지고 있는 거의 모든 증권사의 면담 과정도 비슷할 거다. 희망퇴직이라면 회사가 내건 위로금을 받고 떠나고 싶은 사람이 떠나면 된다. 대상자를 찍어놓고 그들에게만 강하게 압박하는 면담을 보면, 희망퇴직은 사실상 협박과 종용에 의한 강제퇴직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답답해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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