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의사수렴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노조대표자의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판결요지】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반영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부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하여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이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조합원의 단결권 또는 노동조합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①사건의 개요 및 법적 쟁점:K노조는 2014.4월경 K회사와 사업합리화 계획, 특별명예퇴직의 시행, 복지제도의 변경 등에 대하여 노사합의(‘1차 노사합의’)를 하면서 사전에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거나 조합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바가 없었다. K사는 1차 노사합의에 따라 15년 이상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하는 한편, 사업합리화 조치 등에 따라 배치되지 못한 인원들을 지역본부에 재배치하거나 신설된 업무지원 CFT부서로 전보하였다. K노조는 2015.2월경 K회사와 정년제 및 임금피크제 등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에 관하여 노사합의(‘2차 노사합의’)를 할 때에도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거나 사전에 의견을 청취한 바가 없다. 그런데 K노조의 규약에는 ‘임금협약 및 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사항’은 총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고, “본 조합이 교섭대표노조가 되는 경우 위원장은 단체교섭 및 체결권은 있으나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체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규약을 위반할 경우 징계하도록 정하고 있다. 위 노사합의에 따라 명예퇴직한 조합원 69명과 업무지원 CFT부서로 전보된 조합원 157명, 총 226명은 K노조와 노동조합 위원장 정○○, 그리고 위원장을 대리하여 노사합의서에 서명한 한○○을 대상으로 규약 등에 따라 조합원들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고 밀실합의를 함으로써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위 1․2차 노사합의의 무효의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1심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2015.5.15. 선고 2014가합35452 판결)은 1․2차 노사합의의 무효를 확인하는 청구를 각하하고, 위 K노조 외 2명은 공동으로 업무지원 CFT부서로 전보된 조합원 157명에 대해 각 30만 원, 명예퇴직한 조합원 69명에 대해 각 2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피고인 K노조 외 2명만이 항소함으로써 각하(노사합의의 무효 확인의 소)부분은 항소심의 심판범위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손해배상 관련 1심 판결은 원심(서울고등법원 2015.12.16. 선고 2015나2026878 판결)과 대상판결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②노조대표자의 협약체결권한을 제한하는 규약 등의 효력:위 전합 판결에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 대상이 된 단체협약의 내용은 “단체협약의 체결권한은 교섭대표자에게 있고, 조합원 총회의 결과에 따라 교섭위원 전원이 연명으로 서명한다. 단, 본 조항은 노동조합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정한 규정이다(이를 일각에서는 ‘협약인준투표제’라 명명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합의 다수의견은 ‘노조대표자 등이 단체교섭의 결과에 따라 사용자와 단체협약의 내용을 합의한 후 다시 협약안의 가부에 관하여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은 노조대표자 등의 단체협약 체결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 체결권한을 형해화하여 명목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29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노조대표자의 권한을 제한하는 규약의 조항(“본 조합이 교섭대표 노조가 되는 경우 위원장은 단체교섭 및 체결권은 있으나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체결하여야 한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떠한가? 대상판결은 2014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대표자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업무수행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위하여 규약 등에서 내부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한의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그것이 단체협약 체결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이상 허용된다.”라고 판시함으로써 위 규약의 조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단체협약은 개별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을 직접 결정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므로 단체협약의 실질적인 귀속주체는 개별 조합원이고, 따라서 단체협약은 조합원들이 관여하여 형성한 노동조합의 의사에 기초하여 체결되어야 하는 것이 단체교섭의 기본적 요청이라는 면을 법원은 강조하고 있다. 결국 위 판결들을 종합하여 보면, 노조대표자의 협약체결권을 제한하는 단체협약 및 규약은 노조대표자의 체결권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지 여부에 따라 유효성이 결정된다. 예컨대 조합원의 의사수렴절차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규정은 대표자의 협약체결권의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데 그치므로 유효하나, 협약인준투표와 같이 노조대표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한 뒤 조합원 총회를 거쳐 인준을 받도록 하거나 협약의 내용에 대해 합의한 후 단체협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다시 협약안의 가부에 관하여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에만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노조대표자의 체결권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③노조대표자가 규약 등의 절차를 위반하여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 및 위반의 효과: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2차 노사합의의 무효 확인의 소에 대해 1심은 각하하였다. 각하이유를 정리하면, 1․2차 노사합의의 체결주체는 K노조와 K회사인데 무효확인청구는 K노조와 노조대표자만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각 노사합의의 무효를 확인하는 취지의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그 효력이 K회사에 미치지 않아 조합원의 근로조건이나 업무환경이 노사합의 이전의 상태로 복귀된다고 볼 수 없는 점,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데 위 노사합의의 무효를 전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부분은 수긍하기 어려움)을 들어 위 노사합의의 무효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부분은 항소하지 않아 원심과 대상판결의 심판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원심은 ‘내부절차를 거치지 않은 잘못만으로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단체협약의 무효확인의 소가 가능한지에 대한 법리 검토는 별론으로 하고, 단체협약제도의 기능 확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사후적으로 무효를 다투는 것보다 사전적으로 조합원 의사형성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노조대표자를 통해 민주적으로 대표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노조대표자로 하여금 총회에서 사전에 의결하는 등 조합원의 의사수렴절차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규약 등을 위반하여 조합원 의사수렴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노조대표자는 【판결요지】와 같이 조합원에 대한 불법행위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 2014년 대법원 판결의 경우 노조대표자에 대한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민법」 제681조) 위반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이고, 대법원은 “노동조합 대표자는 노동조합의 위임에 따라 그 사무를 집행하고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노동조합에 대하여 수임자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할 뿐이고, 개별 조합원에 대하여서까지 위임관계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이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하였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노조대표자 등에게 불법행위의 손해배상책임을 물은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K노조 대표자 등은 조합원 총회의 의결 없이 노사합의를 체결하는 관행이 있고, 노사합의를 노조대표자가 직권으로 체결하는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묵시적 수권이 존재하며, 규약위반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원심 법원은 이를 모두 배척하였다. 과거 이른바 노조대표자의 ‘직권조인’을 경험한 이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규약 등에 위와 같이 노조대표자의 협약체결권한을 제한하는 규정을 둔 것임을 생각하면 K노조 대표자는 자신이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규범을 전면으로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④시사점:대상판결은 직권조인한 노조대표자에 대해 최초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로서 큰 의의가 있다. 이 판결의 논거는 복수노조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섭대표노조는 교섭과정에서 소수노조의 의견수렴, 교섭경과 및 교섭결과의 통지․설명 등의 정보제공과 교섭의제의 반영 등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한다. 교섭대표노조가 이러한 의무를 위반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수노조 조합원에 대해 협약안에 대한 찬반투표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교섭대표노조가 이와 같이 소수노조 조합원에게 부여된 절차참여권을 침해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소수노조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불법행위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교섭과정에서의 공정대표의무 확보방안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서 흠결된 민주적 정당성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강선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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