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이명박, 꼭 닮고 퍽 다른 집권 1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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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10:21
박근혜와 이명박, 꼭 닮고 퍽 다른 집권 1년의 기록
시사INLive천관율 기자입력2013.12.19 04:13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길을 착실히 따라가고 있다. 두 정부의 집권 첫해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대선 1주년을 맞아 두 정부의 1년차 궤적을 비교해봤다.
보수 탈색, 중도 확장으로 집권 성공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만 보면 문재인 후보와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좌클릭이었다. 공약만 좌클릭하고 집권 후에는 보수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는 '신뢰의 정치인' 브랜드를 앞세워 답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 술 더 떴다. 좌우 이념 대결보다 경제에 집중하자며,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진보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중도 확장 전략을 펴며 '오른쪽'을 너무 비워둔 나머지, 그를 보수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회창 후보가 출마할 정도였다.
초대형 위기 맞아 때 이르게 휘청
집권 1년차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해다. 가장 힘이 세고 여론의 뒷받침이 강력한 1년차는 정권 차원의 의제를 관철할 최적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제때 해소하지 못하고 일을 키웠다. 남북 정상회의록 공개 강행, 이석기 사건 내란죄 적용,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등 국면 전환 카드를 숱하게 던졌다.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늘 되살아나 결국 박근혜 정부 1년차를 통째로 수렁에 빠뜨리다시피 했다. 정권 차원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기론은 과장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권 첫해 지지율은 성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기대감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정권이 가장 힘이 센 1년차에 성과를 만들어내야 장기적으로 유지가 가능한 지지율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임기 첫해 박근혜 정부는 대선개입 의혹에 대응하느라 사실상 손발이 묶였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작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아도 정권 차원의 전략과 의제 설정을 찾아보기 힘들다(16~19쪽 기사 참조).
박근혜 정권의 어설픈 위기관리 능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오히려 키웠다. 정권은 검찰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개인 비리로 기소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이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면서 청와대의 '검찰 관리'가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이후 청와대는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교체하며 검찰 고삐를 죄려 한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려던 검찰 수사라인은 사실상 '찍어내기'를 당했다. 이 과정조차 매끄럽지 않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조오영 행정관이 개인정보 불법 열람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혀 관련이 없다던 청와대는 이후 "개인적 일탈"이라며 방어선을 후퇴시켜야 했다. 윤석열 전 수사팀장도 개운치 않게 수사 배제를 당했다. 윤 전 팀장은 국정감사에 출석해 수사 과정에서 외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곳곳에 '윗선'의 개입 흔적이 드러나면서, 대선개입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 6개월 만에 초대형 촛불집회를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100일 동안 이어지며 한때 정권 지지율을 한 자릿수로까지 끌어내렸다.
어설픈 위기관리도 판박이였다. 촛불집회 초기에 경찰이 군홧발로 여대생의 머리를 밟는 영상 등 과한 강경 대응이 온라인을 타고 퍼지며 집회에 불을 붙였다. MB는 대국민 사과와 강경 진압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위기돌파형 보수 결집에 '올드보이' 득세
집권 1년차의 박근혜 정부에서 대선 당시의 중도 확장 노선은 사실상 증발했다. 위기를 돌파해야 했던 박근혜 정부는 '종북' 공세를 앞세운 강경 보수 노선으로 회귀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선 당시까지 2선에 머물렀던 '올드보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물은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8월5일 임명된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의 일원으로, 유신헌법 작성에도 참여한 인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9년생, 74세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을 계기로 '신386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 활동을 시작한, 80세를 바라보는 세대라는 뜻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에서, 박근혜 정부는 숨 돌릴 틈 없는 공안·강경 드라이브를 걸었다. 8월28일에는 통진당 이석기 의원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한다. 내란음모 혐의. 역사책에 들어간 줄 알았던 단어가 부활했다. 9월에는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청구 검토 특별팀이 생긴다. 11월5일 정부는 통진당 해산청구를 의결한다.
전교조·전공노·철도노조 등 노동조합에 대한 공세도 거세다. 전교조는 10월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전교조와 전공노는 대선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도 당했다. 철도노조는 KTX 민영화 저지 총파업에 들어가자마자 파업 참가자 전원에 대한 직위해제를 이어가, 12월13일 현재 7843명을 직위해제했다.
MB 정부 역시 촛불에 얻어맞은 직후부터 뚜렷한 우경화의 길을 걸었다. 대선을 주도했던 소장파가 퇴조하고 이상득·최시중 등 '올드보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이후 지지율 반등이 시원치 않자 집권 2년차에 다시 한번 중도실용 노선을 천명하기는 했지만, 실제 내용까지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중도의 얼굴마담 줄줄이 하차
정권의 보수 결집 강경노선이 분명해지면서 나타나는 반작용이 있다. 중도 확장 아이콘들의 연이은 이탈이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새누리당 탈당 계획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노선에 대해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는 할 얘기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내비쳤다.
박근혜표 중도 공략의 얼굴마담은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였다. 당시 김종인 전 위원장과 더불어 비대위의 투 톱 격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각종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김기춘 비서실장 이후 청와대가 외부와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다. 두루 다녀보면, 박근혜를 지지했던 분들이 이제는 실망을 넘어 적대감을 느끼는 징조까지 보인다. 위험신호다"라고 말했다.
비대위에서 청년 세대 포용의 상징 격이었던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입을 열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국회의원 제명안에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서명한 것을 두고 이 전 위원은 "새누리당은 성향상 온건 보수로 분류되는 분들이 3분의 2는 되는데, 이번 사안을 놓고 보면 강경 보수 의견만 계속 표출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체주의 느낌을 받는다'고도 했다.
이는 대선 당시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노선의 사실상 파기와 맞닿아 있다. 절차적 정당성 위기에 이어 내용적 정당성 위기까지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도 확장 노선을 대표하는 이들이 줄줄이 이탈하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확장 노선을 다시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때 가서 국정 쇄신을 하려 해도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없어진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라는 캐릭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 쓴소리를 한 이들을 다시 중용하는 일은 없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 대목에서 박 대통령은 예외가 없다. 딱 한 번, 김무성 카드를 대선캠프 총괄본부장으로 불러올릴 때에만 고집을 꺾었는데, 그때는 대선을 이기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과는 경우가 다르다."
MB 정부 당시에도 정권이 보수 노선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중도개혁 노선을 대표했던 이들(정두언·정태근·박형준·곽승준)은 대부분 내부 권력투쟁에서 패퇴했다. 대선을 총괄했던 정두언 의원은 이상득·박영준 라인과의 힘싸움에서 밀려나 실각했다. 정 의원과 정태근 당시 의원은 은밀히 사찰까지 받았다. 곽승준 당시 미래기획위원장도 정권 차원의 어젠다를 세팅하는 역할에서 밀려났다.
"박근혜가 MB보다 더 위험하다"
중도 확장 노선으로 집권→집권 1년차에 맞은 뜻밖의 위기→어설픈 위기관리로 상황 악화→보수 결집 강경 노선으로 돌파 시도→중도 확장 아이콘들의 실각….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집권 1년차에 보여준 궤적은 퍽 닮았다.
하지만 합리적 보수로 분류되는 한 원로는 "박근혜가 MB보다 더 위험하다"라고 단언한다. 어떤 이유일까. "MB는 그래도 한국 사회의 성장과 함께 커온 사람이다. 현 단계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차이는 알았는데, 박 대통령은 이게 없다. 현 단계 한국 사회의 복잡성과, 각 부문의 성장 수준을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러면 통치가 안 된다."
이를테면 MB 정부는 검찰을 장악하려면 검찰 내부의 권력관계와 경쟁 구도를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는 정권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전략 없이 검찰이 당연히 청와대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감상평이다. "검찰이 1970년대처럼 고분고분할 거라 생각하다 당한 거지. '시대 격차'가 너무 커서 검찰 장악조차 어설퍼."
그가 꼽은 '시대 격차'의 또 다른 예는 청와대 안보실장에 군 출신인 김장수를 앉힌 것이다. "21세기에 우리 정도 국가에서는, 안보의 핵심은 경제와 외교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군인에게 안보 총괄직을 맡기는 걸 보니, 아직도 안보가 북한과의 군사 문제인 줄 아는 것 같다. 옛날식 상명하복에 익숙한 박 대통령이, 군인(김장수 안보실장·남재준 국정원장)과 공안(김기춘 비서실장)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벤처기업을 하는 사업가 김 아무개씨(38)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들을 때마다 한숨을 쉰다. "창조의 핵심은 '실패'다. 여러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있어야만 창조도 가능하다. 그러니 정부가 할 일은 실패를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 다음은 민간의 몫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실패'에는 관심이 없고 성공 케이스만 잔뜩 나열한다. '이런저런 창조를 하라'고 명령하는 꼴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끌어가는 개발독재 모델과 21세기형 성장전략의 어울리지 않는 동거가 창조경제론이라는 얘기다. 여기서도 박 대통령은 '시대 격차'를 노출했다.
앞서의 원로는 박근혜 정부의 집권 2년차를 이렇게 전망했다. "원래 집권 1년이 지나면 대통령은 국정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뭐든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이후부터는 노선 변경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국정 쇄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워낙 야권이 지리멸렬하니 지방선거에서도 의미 있는 경고 신호가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러면 불만은 불만대로 쌓이는데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자신감이 붙는다. 결국 정치는 실종되고, 광장에서 '강 대 강'이 충돌하게 된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보수 탈색, 중도 확장으로 집권 성공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만 보면 문재인 후보와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좌클릭이었다. 공약만 좌클릭하고 집권 후에는 보수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는 '신뢰의 정치인' 브랜드를 앞세워 답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 술 더 떴다. 좌우 이념 대결보다 경제에 집중하자며,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진보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중도 확장 전략을 펴며 '오른쪽'을 너무 비워둔 나머지, 그를 보수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회창 후보가 출마할 정도였다.
초대형 위기 맞아 때 이르게 휘청
집권 1년차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해다. 가장 힘이 세고 여론의 뒷받침이 강력한 1년차는 정권 차원의 의제를 관철할 최적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제때 해소하지 못하고 일을 키웠다. 남북 정상회의록 공개 강행, 이석기 사건 내란죄 적용,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등 국면 전환 카드를 숱하게 던졌다.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늘 되살아나 결국 박근혜 정부 1년차를 통째로 수렁에 빠뜨리다시피 했다. 정권 차원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기론은 과장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권 첫해 지지율은 성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기대감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정권이 가장 힘이 센 1년차에 성과를 만들어내야 장기적으로 유지가 가능한 지지율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임기 첫해 박근혜 정부는 대선개입 의혹에 대응하느라 사실상 손발이 묶였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작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아도 정권 차원의 전략과 의제 설정을 찾아보기 힘들다(16~19쪽 기사 참조).
박근혜 정권의 어설픈 위기관리 능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오히려 키웠다. 정권은 검찰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개인 비리로 기소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이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면서 청와대의 '검찰 관리'가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이후 청와대는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교체하며 검찰 고삐를 죄려 한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중도 노선이 사라지면서 구원투수로 김기춘 비서실장(맨 위 왼쪽)이 등장했다. MB 정부에서는 촛불정국 이후 이상득 의원(위 왼쪽) 등이 전면에 나섰다. |
이명박 정부는 대선 6개월 만에 초대형 촛불집회를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100일 동안 이어지며 한때 정권 지지율을 한 자릿수로까지 끌어내렸다.
어설픈 위기관리도 판박이였다. 촛불집회 초기에 경찰이 군홧발로 여대생의 머리를 밟는 영상 등 과한 강경 대응이 온라인을 타고 퍼지며 집회에 불을 붙였다. MB는 대국민 사과와 강경 진압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위기돌파형 보수 결집에 '올드보이' 득세
집권 1년차의 박근혜 정부에서 대선 당시의 중도 확장 노선은 사실상 증발했다. 위기를 돌파해야 했던 박근혜 정부는 '종북' 공세를 앞세운 강경 보수 노선으로 회귀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선 당시까지 2선에 머물렀던 '올드보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물은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8월5일 임명된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의 일원으로, 유신헌법 작성에도 참여한 인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9년생, 74세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을 계기로 '신386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 활동을 시작한, 80세를 바라보는 세대라는 뜻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에서, 박근혜 정부는 숨 돌릴 틈 없는 공안·강경 드라이브를 걸었다. 8월28일에는 통진당 이석기 의원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한다. 내란음모 혐의. 역사책에 들어간 줄 알았던 단어가 부활했다. 9월에는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청구 검토 특별팀이 생긴다. 11월5일 정부는 통진당 해산청구를 의결한다.
전교조·전공노·철도노조 등 노동조합에 대한 공세도 거세다. 전교조는 10월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전교조와 전공노는 대선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도 당했다. 철도노조는 KTX 민영화 저지 총파업에 들어가자마자 파업 참가자 전원에 대한 직위해제를 이어가, 12월13일 현재 7843명을 직위해제했다.
MB 정부 역시 촛불에 얻어맞은 직후부터 뚜렷한 우경화의 길을 걸었다. 대선을 주도했던 소장파가 퇴조하고 이상득·최시중 등 '올드보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이후 지지율 반등이 시원치 않자 집권 2년차에 다시 한번 중도실용 노선을 천명하기는 했지만, 실제 내용까지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중도의 얼굴마담 줄줄이 하차
정권의 보수 결집 강경노선이 분명해지면서 나타나는 반작용이 있다. 중도 확장 아이콘들의 연이은 이탈이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새누리당 탈당 계획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노선에 대해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는 할 얘기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내비쳤다.
박근혜표 중도 공략의 얼굴마담은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였다. 당시 김종인 전 위원장과 더불어 비대위의 투 톱 격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각종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김기춘 비서실장 이후 청와대가 외부와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다. 두루 다녀보면, 박근혜를 지지했던 분들이 이제는 실망을 넘어 적대감을 느끼는 징조까지 보인다. 위험신호다"라고 말했다.
비대위에서 청년 세대 포용의 상징 격이었던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입을 열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국회의원 제명안에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서명한 것을 두고 이 전 위원은 "새누리당은 성향상 온건 보수로 분류되는 분들이 3분의 2는 되는데, 이번 사안을 놓고 보면 강경 보수 의견만 계속 표출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체주의 느낌을 받는다'고도 했다.
이는 대선 당시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노선의 사실상 파기와 맞닿아 있다. 절차적 정당성 위기에 이어 내용적 정당성 위기까지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도 확장 노선을 대표하는 이들이 줄줄이 이탈하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확장 노선을 다시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때 가서 국정 쇄신을 하려 해도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없어진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라는 캐릭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 쓴소리를 한 이들을 다시 중용하는 일은 없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 대목에서 박 대통령은 예외가 없다. 딱 한 번, 김무성 카드를 대선캠프 총괄본부장으로 불러올릴 때에만 고집을 꺾었는데, 그때는 대선을 이기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과는 경우가 다르다."
ⓒ연합뉴스 지난 8월10일 국정원 댓글사건 규탄 촛불집회(맨 위).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위). |
"박근혜가 MB보다 더 위험하다"
중도 확장 노선으로 집권→집권 1년차에 맞은 뜻밖의 위기→어설픈 위기관리로 상황 악화→보수 결집 강경 노선으로 돌파 시도→중도 확장 아이콘들의 실각….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집권 1년차에 보여준 궤적은 퍽 닮았다.
하지만 합리적 보수로 분류되는 한 원로는 "박근혜가 MB보다 더 위험하다"라고 단언한다. 어떤 이유일까. "MB는 그래도 한국 사회의 성장과 함께 커온 사람이다. 현 단계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차이는 알았는데, 박 대통령은 이게 없다. 현 단계 한국 사회의 복잡성과, 각 부문의 성장 수준을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러면 통치가 안 된다."
이를테면 MB 정부는 검찰을 장악하려면 검찰 내부의 권력관계와 경쟁 구도를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는 정권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전략 없이 검찰이 당연히 청와대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감상평이다. "검찰이 1970년대처럼 고분고분할 거라 생각하다 당한 거지. '시대 격차'가 너무 커서 검찰 장악조차 어설퍼."
그가 꼽은 '시대 격차'의 또 다른 예는 청와대 안보실장에 군 출신인 김장수를 앉힌 것이다. "21세기에 우리 정도 국가에서는, 안보의 핵심은 경제와 외교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군인에게 안보 총괄직을 맡기는 걸 보니, 아직도 안보가 북한과의 군사 문제인 줄 아는 것 같다. 옛날식 상명하복에 익숙한 박 대통령이, 군인(김장수 안보실장·남재준 국정원장)과 공안(김기춘 비서실장)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벤처기업을 하는 사업가 김 아무개씨(38)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들을 때마다 한숨을 쉰다. "창조의 핵심은 '실패'다. 여러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있어야만 창조도 가능하다. 그러니 정부가 할 일은 실패를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 다음은 민간의 몫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실패'에는 관심이 없고 성공 케이스만 잔뜩 나열한다. '이런저런 창조를 하라'고 명령하는 꼴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끌어가는 개발독재 모델과 21세기형 성장전략의 어울리지 않는 동거가 창조경제론이라는 얘기다. 여기서도 박 대통령은 '시대 격차'를 노출했다.
앞서의 원로는 박근혜 정부의 집권 2년차를 이렇게 전망했다. "원래 집권 1년이 지나면 대통령은 국정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뭐든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이후부터는 노선 변경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국정 쇄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워낙 야권이 지리멸렬하니 지방선거에서도 의미 있는 경고 신호가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러면 불만은 불만대로 쌓이는데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자신감이 붙는다. 결국 정치는 실종되고, 광장에서 '강 대 강'이 충돌하게 된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