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1심 패소 뒤 사측과 합의

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지난 3월30일 6차 특별노사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에 잠정합의했다. 합의내용은 4월8일 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확정됐다.

주요 합의 내용은 △정기상여금 800% 통상임금에 산입(소정근로 209시간) △주간근무자 교육수당 지급 시간 월 7시간에서 10시간으로 확대 △기본급 정액 5만원 인상이다. 사측은 기술직 노동자의 연간 임금이 13~15%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노조는 조합원 7명이 대표하는 방식으로 2016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각종 법정수당 차액을 지급하라며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패소했다. SK이노베이션 취업규칙에는 재직자에 한해 정기상여금을 주도록 돼 있기 때문에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번 합의로 노조는 소송을 취하했고 7년째 끌던 통상임금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노조는 노사협의 과정에서 소급분 지급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대법원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부터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 판결까지 십수건에 달하는 판결에서 ‘재직자 기준 유효성’을 인정하는 기조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며 “대법원 판례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며 거절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여금에 재직조건이 붙은 경우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노조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판결을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로 미룬 상태였다.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은 서울고법이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해 2018년 12월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판결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됐다.

“재직자 요건 뒤집히는데 소급도 안 해” 반발도

노조 내부에서는 합의내용에 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는데 합의를 서둘렀다는 지적이다.

취업규칙에는 소정근로시간이 180시간으로 명시돼 있는데, 이번 합의에서 209시간으로 늘리면서 통상시급이 줄고 소급분도 받지 못했다. SK이노베이션 기술직 직원 A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현대자동차 관련 판결도 그렇고 최근에 노동조합에 유리한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보통 합의를 하게 되면 소급분도 어느 정도 인정해서 지급하는데, 소급분 자체를 10원도 안 받았다”며 답답해 했다. 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소송의 결과를 100% 장담할 수 없다는 건 조합원도 알고 있다”면서도 “(조합원에) 유리한 건 사실이니 현 상황에서 합의한다면 조합원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게재됐다.

노조 “절차상 문제 없어”
사측 “통상임금 아닌데도 합의해 줘”

SK이노베이션노조가 4월8일 특별노사협의회에서 나온 회사 최종제시안을 임시대의원대회에 올려 가결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합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 관계자는 “대의원대회를 거쳐 결정한 것이고 통상임금 소송을 넣을 때도 대의원대회 승인을 얻어 제기했다”며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1차 소송에서 패소해 단체소송을 못 넣었다”며 “소급분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 사쪽은 “2013년 대법원 판례 후 노사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 왔다”며 “오랫동안 대화가 오갔고,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위해 최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 회사 정기상여금은) 2013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지만 사측이 선제적으로 제안해 합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세아베스틸 사건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한 것은 소송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최근 정기상여금 지급의 재직조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등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소정근로시간을 불리하게 적용하는 합의를 한 것은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강예슬 기자